나는 옛부터 좌익정치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 글에서 나는 이유를 간단하게 제시하려고 한다. 좌익정치가 왜 망했나? 흔히 말하는 좌익 이론가와 좌익 (문화) 평론가를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밈을 한번 생각해보자.
ㄱ) A는 A를 낳는다.
이 논리는 좌익이론에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좌익이론은 무엇을 낳을까?
ㄴ) 좌익 이론은 좌익 이론을 낳는다.
보 통 이렇게 생각한다. 좌익이 선호하는 주제가 있다. 좌익은 대체로 진보적 정치를 추구하고, 자본주의의 몇몇 경향에 반대한다. 주로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이론을 펼친다. 그들의 글을 읽은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따라서 좌익이론은 좌익이론을 낳는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조금씩 바뀐다. 좌익이론을 선호하거나, 좌익 정치를 선호해도 조금씩 다른 내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히려 내용보다 다른 것이 계속 복제/전달된다.
ㄷ) 좌익 이론은 태도를 낳는다.
이것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좌익평론가의 글을 읽고, 사람들은 좌익평론가의 "생각/의견"을 배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태도를 배운다. 태도가 전달된다. 좌익 평론가의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좌익 평론가처럼 살아간다. 태도가 전달된다. (혹은 복제된다.)
이 주장은 조금 허탈하게 보인다. 태도가 전달되고 복제된다고 해보자. 당신은 좌익이론에 해박하고, 나름대로 비평적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체제에 전혀 위협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좌익 평론가처럼 말하고 행동하니까. 오늘날 좌익평론가는 체제에 위협을 주는 인물이 아니다. 정치 활동가의 글을 한번 읽어보라. 당신이 레닌의 글을 한번 읽어보라. 레닌은 독자가 자신처럼 행동하기 원하는 것 같다. 당신이 레닌의 의도를 제대로 읽었다면, 당신은 레닌처럼 행동할 것이다.
내 말이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잠시 편견을 내려놓고 역사를 한번 보라. 20년전 한국좌익이론을 한번 찾아보라. 그 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라. 지금 좌익이 하는 얘기와 상당히 다르다. 주요 이론가도 다르다. 그런데 그 때 좌익이었던 사람이 지금도 대체로 좌익을 선호한다. 결국 무엇이 전달되었나? 알튀세르나 라깡? 아니다. 좌익스런 태도가 전달되었다. 그런데 좌익이론가 가운데 행동을 촉구하거나 당신에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한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들은 대체로 좌익평론가이며, 좌익평론가의 태도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ㄹ) 체제를 위협하는 태도를 전달해야 하나? 그렇다면 무엇이 체제를 위협하는 태도인가?
[물론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체제를 꼭 위협해야 하나?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자.]
=> 이 문제를 풀기위해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ㅁ) 이론가는 이론가다. 이론가가 실천가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보 통 ㅁ)를 많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태도가 전달된다고 말했다. 이론가가 이론을 말하더라도, 은밀히 태도가 전달된다. 따라서 ㅁ)을 주장할 수 있지만, 전달되는 것은 태도이다. 반면, 예언자나 사도는 말과 존재를 그렇게 분리하지 않는다.
무엇을 전달되는지 고려한다면, 흔한 대립도 피할 수 있다. 보통 이론가는 실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고 구박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이론가가 실천적 대안을 내놓았다고 하자. 당신은 대안을 실천할 마음이 있나? 여기서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따지려고 한다. 대안이 과연 현실적인지 따져보자... 결국 논의는 계속 된다. 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의 분리로 고민하는 것은 그다지 소득이 없다. 앞서 말한대로 태도가 전달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ㅅ) 이론가든, 실천가든, 이론을 펼칠 때, 어떤 행동을 할 때, 실제로 무엇이 전달되나?
ㅇ) 말과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 이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내용을 가지고 떠든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처럼" 행동하는지 자세히 보라. 지금 도덕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떤 태도가 전달되고, 반복되는지 주시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날 좌익이 떠드는 주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치적 문제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내용은 아무 상관이 없느냐 => 좌익과 우익이 주장하는 내용은 분명 다르다. 당신이 좌익에 속했다면, 일단 그 쪽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주장에 따르면, 좌익안에서 내용의 차이는 큰 뜻이 없다.
**그래도 내용에 따라 결국 행동이 결정되는게 아니냐 : 하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정말 그렇더냐? 내가 볼 때 이 질문을 많은 좌익이론가가 무시했다. 어떤 이론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했다. 그들이 "누구처럼" 말하는지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배우고 행동하는지 알아보자.. 그런 뜻인가? : 일반적 학습심리학보다 학습사회학을 말하고 싶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밈을 한번 생각해보자.
ㄱ) A는 A를 낳는다.
이 논리는 좌익이론에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좌익이론은 무엇을 낳을까?
ㄴ) 좌익 이론은 좌익 이론을 낳는다.
보 통 이렇게 생각한다. 좌익이 선호하는 주제가 있다. 좌익은 대체로 진보적 정치를 추구하고, 자본주의의 몇몇 경향에 반대한다. 주로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이론을 펼친다. 그들의 글을 읽은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따라서 좌익이론은 좌익이론을 낳는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조금씩 바뀐다. 좌익이론을 선호하거나, 좌익 정치를 선호해도 조금씩 다른 내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히려 내용보다 다른 것이 계속 복제/전달된다.
ㄷ) 좌익 이론은 태도를 낳는다.
이것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좌익평론가의 글을 읽고, 사람들은 좌익평론가의 "생각/의견"을 배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태도를 배운다. 태도가 전달된다. 좌익 평론가의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좌익 평론가처럼 살아간다. 태도가 전달된다. (혹은 복제된다.)
이 주장은 조금 허탈하게 보인다. 태도가 전달되고 복제된다고 해보자. 당신은 좌익이론에 해박하고, 나름대로 비평적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체제에 전혀 위협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좌익 평론가처럼 말하고 행동하니까. 오늘날 좌익평론가는 체제에 위협을 주는 인물이 아니다. 정치 활동가의 글을 한번 읽어보라. 당신이 레닌의 글을 한번 읽어보라. 레닌은 독자가 자신처럼 행동하기 원하는 것 같다. 당신이 레닌의 의도를 제대로 읽었다면, 당신은 레닌처럼 행동할 것이다.
내 말이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잠시 편견을 내려놓고 역사를 한번 보라. 20년전 한국좌익이론을 한번 찾아보라. 그 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라. 지금 좌익이 하는 얘기와 상당히 다르다. 주요 이론가도 다르다. 그런데 그 때 좌익이었던 사람이 지금도 대체로 좌익을 선호한다. 결국 무엇이 전달되었나? 알튀세르나 라깡? 아니다. 좌익스런 태도가 전달되었다. 그런데 좌익이론가 가운데 행동을 촉구하거나 당신에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한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들은 대체로 좌익평론가이며, 좌익평론가의 태도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ㄹ) 체제를 위협하는 태도를 전달해야 하나? 그렇다면 무엇이 체제를 위협하는 태도인가?
[물론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체제를 꼭 위협해야 하나?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자.]
=> 이 문제를 풀기위해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ㅁ) 이론가는 이론가다. 이론가가 실천가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보 통 ㅁ)를 많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태도가 전달된다고 말했다. 이론가가 이론을 말하더라도, 은밀히 태도가 전달된다. 따라서 ㅁ)을 주장할 수 있지만, 전달되는 것은 태도이다. 반면, 예언자나 사도는 말과 존재를 그렇게 분리하지 않는다.
무엇을 전달되는지 고려한다면, 흔한 대립도 피할 수 있다. 보통 이론가는 실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고 구박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이론가가 실천적 대안을 내놓았다고 하자. 당신은 대안을 실천할 마음이 있나? 여기서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따지려고 한다. 대안이 과연 현실적인지 따져보자... 결국 논의는 계속 된다. 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의 분리로 고민하는 것은 그다지 소득이 없다. 앞서 말한대로 태도가 전달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ㅅ) 이론가든, 실천가든, 이론을 펼칠 때, 어떤 행동을 할 때, 실제로 무엇이 전달되나?
ㅇ) 말과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 이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내용을 가지고 떠든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처럼" 행동하는지 자세히 보라. 지금 도덕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떤 태도가 전달되고, 반복되는지 주시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날 좌익이 떠드는 주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치적 문제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내용은 아무 상관이 없느냐 => 좌익과 우익이 주장하는 내용은 분명 다르다. 당신이 좌익에 속했다면, 일단 그 쪽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주장에 따르면, 좌익안에서 내용의 차이는 큰 뜻이 없다.
**그래도 내용에 따라 결국 행동이 결정되는게 아니냐 : 하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정말 그렇더냐? 내가 볼 때 이 질문을 많은 좌익이론가가 무시했다. 어떤 이론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했다. 그들이 "누구처럼" 말하는지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배우고 행동하는지 알아보자.. 그런 뜻인가? : 일반적 학습심리학보다 학습사회학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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