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침공한다면,
외계인이 배가 고파서 지구로 왔다. 알고보니 인간이 아주 끔찍하게 좋은 식품이다. 그래서 외계인은 인간을 식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외계인은 인간을 속여서 조금씩 인간을 식품으로 만든다. 어떤 인간이 외계인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외계인에게 저항한다... 영화나 연속극의 주제였다. 지금도 이런 주제는 꽤 통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 과학이 상식이 아닌 세상에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었다. 기독교를 보자.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마귀와 천사를 논한다. 마귀와 천사가 신학 주제였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종교를 배척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은 대체로 이런 존재를 상상의 존재라고 여긴다. 그냥 인간이 상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그렇다고 지구에 사는 동물이나 식물도 아닌 존재. 이런 존재가 있다는 생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진화론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상상하게 만든다.
진화론을 한번 보라. 인간과 동물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원래 다르지 않다. 또한 인간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니다. 다른 행성에 산다. 인간보다 상당히 뛰어나다. 이런 존재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나? 더 재미있는 추론을 해보자. 인간과 거의 같다. 그런데 인간 피를 빨아먹는다. 동물피도 먹는다. 밤에만 나다닌다. 이런 존재가 없다고 할 수 있나? 아마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있을지 모른다.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영화<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정확하게 이 추론을 영상으로 번역했다. 영화는 일단 종교적 분위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흡혈귀는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독교 상징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어떤 종교상징도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자외선에 매우 약하므로 밤에만 나다닌다. 진화론으로 보면 오히려 이들의 존재가 분명히 규명된다. 이들은 초기 인간에서 진화한 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보다 힘이 더 세고, 감각도 더 발달한 것 같다. 이들은 주로 인간피를 먹는다. 따라서 흡혈귀의 주요 음식은 인간이다. 이런 존재가 인간을 공격한다.
이런 존재가 인간을 공격할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영화의 답은 간단하다.
ㄱ) 인간과 흡혈귀는 공존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는 제거되어야 한다.
흡혈귀 영화는 대체로 이것을 정답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인간이 흡혈귀에 물리면 죽거나 흡혈귀가 된다. 흡혈귀가 되면 인간의 특징을 잃는다. 따라서 그를 인간으로 대접할 수 없다. 아이가 흡혈귀로 변하여 엄마 피를 빨아먹는다면, 아이는 과연 아이인가? 영화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도 흡혈귀로 변하면, 아이로 대접하지 않는다. 그것도 제거되어야 한다.
ㄴ) 인간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아마 ㄴ) 주장은 다소 수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급박한 상황을 들이민다. 흡혈귀가 물려고 달려든다면, ㄴ)이 맞는지 따질 생각이 없을 것이다. 일단 진화를 통해 생겨난 괴물이 달려들면 인간은 일단 인간생존을 가장 중요하겨 여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생존을 위해서 괴물을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 아닌가? 하지만 생존게임에 매달리면 인간도 인간의 특성을 잃는다. 개인이 볼 때 일단 자기가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내가 살아야 한다. 이런 사람도 분명 있지만 집단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다. 영화 주인공은 마을 사람을 먼저 챙긴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어가면서. 따라서 생존이 중요하다고 할 때, 개인이 반드시 자기 생존만 챙기지는 않는다.
ㄷ) 인간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보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한다. 주인공은 우리를 지키려고 스스로 흡혈귀가 된다. 흡혈귀와 싸우려면 흡혈귀가 되어야 하니까. 주인공은 ㄷ)을 긍정하지만 ㄷ)을 위해 '인간'을 포기한다. 부인과 아이를 살리려고 자신이 흡혈귀가 된다. 그리고 흡혈귀와 싸운다. 주인공은 승리하고 흡혈귀는 물러간다. 주인공은 부인에게 묻는다. 나도 저들(흡혈귀)을 따라가야 할까? 주인공은 인간을 포기하지만 흡혈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침 해를 보면서 햇빛에 타죽는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ㄹ) 인간됨을 지키려고 생존을 포기할 수 있다.
물론 ㄹ)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생존을 포기할 때, 반드시 다른 목적이나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죽음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으나 과연 어떤 목적이나 이익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진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은 지나치게 자기 종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며 다른 존재가 될 수 없어! 그런데 인간에게 윤리는 이런 차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어! 물론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자기를 삭제하는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다른 존재로 변할 가능성이 오늘날 더욱 커졌다. 이런 시대에 자기-삭제의 윤리는 어떤 뜻을 우리에게 줄까?
외계인이 배가 고파서 지구로 왔다. 알고보니 인간이 아주 끔찍하게 좋은 식품이다. 그래서 외계인은 인간을 식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외계인은 인간을 속여서 조금씩 인간을 식품으로 만든다. 어떤 인간이 외계인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외계인에게 저항한다... 영화나 연속극의 주제였다. 지금도 이런 주제는 꽤 통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 과학이 상식이 아닌 세상에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었다. 기독교를 보자.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마귀와 천사를 논한다. 마귀와 천사가 신학 주제였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종교를 배척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은 대체로 이런 존재를 상상의 존재라고 여긴다. 그냥 인간이 상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그렇다고 지구에 사는 동물이나 식물도 아닌 존재. 이런 존재가 있다는 생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진화론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상상하게 만든다.
진화론을 한번 보라. 인간과 동물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원래 다르지 않다. 또한 인간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니다. 다른 행성에 산다. 인간보다 상당히 뛰어나다. 이런 존재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나? 더 재미있는 추론을 해보자. 인간과 거의 같다. 그런데 인간 피를 빨아먹는다. 동물피도 먹는다. 밤에만 나다닌다. 이런 존재가 없다고 할 수 있나? 아마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있을지 모른다.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영화<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정확하게 이 추론을 영상으로 번역했다. 영화는 일단 종교적 분위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흡혈귀는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독교 상징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어떤 종교상징도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자외선에 매우 약하므로 밤에만 나다닌다. 진화론으로 보면 오히려 이들의 존재가 분명히 규명된다. 이들은 초기 인간에서 진화한 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보다 힘이 더 세고, 감각도 더 발달한 것 같다. 이들은 주로 인간피를 먹는다. 따라서 흡혈귀의 주요 음식은 인간이다. 이런 존재가 인간을 공격한다.
이런 존재가 인간을 공격할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영화의 답은 간단하다.
ㄱ) 인간과 흡혈귀는 공존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는 제거되어야 한다.
흡혈귀 영화는 대체로 이것을 정답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인간이 흡혈귀에 물리면 죽거나 흡혈귀가 된다. 흡혈귀가 되면 인간의 특징을 잃는다. 따라서 그를 인간으로 대접할 수 없다. 아이가 흡혈귀로 변하여 엄마 피를 빨아먹는다면, 아이는 과연 아이인가? 영화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도 흡혈귀로 변하면, 아이로 대접하지 않는다. 그것도 제거되어야 한다.
ㄴ) 인간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아마 ㄴ) 주장은 다소 수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급박한 상황을 들이민다. 흡혈귀가 물려고 달려든다면, ㄴ)이 맞는지 따질 생각이 없을 것이다. 일단 진화를 통해 생겨난 괴물이 달려들면 인간은 일단 인간생존을 가장 중요하겨 여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생존을 위해서 괴물을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 아닌가? 하지만 생존게임에 매달리면 인간도 인간의 특성을 잃는다. 개인이 볼 때 일단 자기가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내가 살아야 한다. 이런 사람도 분명 있지만 집단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다. 영화 주인공은 마을 사람을 먼저 챙긴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어가면서. 따라서 생존이 중요하다고 할 때, 개인이 반드시 자기 생존만 챙기지는 않는다.
ㄷ) 인간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보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한다. 주인공은 우리를 지키려고 스스로 흡혈귀가 된다. 흡혈귀와 싸우려면 흡혈귀가 되어야 하니까. 주인공은 ㄷ)을 긍정하지만 ㄷ)을 위해 '인간'을 포기한다. 부인과 아이를 살리려고 자신이 흡혈귀가 된다. 그리고 흡혈귀와 싸운다. 주인공은 승리하고 흡혈귀는 물러간다. 주인공은 부인에게 묻는다. 나도 저들(흡혈귀)을 따라가야 할까? 주인공은 인간을 포기하지만 흡혈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침 해를 보면서 햇빛에 타죽는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ㄹ) 인간됨을 지키려고 생존을 포기할 수 있다.
물론 ㄹ)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생존을 포기할 때, 반드시 다른 목적이나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죽음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으나 과연 어떤 목적이나 이익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진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은 지나치게 자기 종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며 다른 존재가 될 수 없어! 그런데 인간에게 윤리는 이런 차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어! 물론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자기를 삭제하는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다른 존재로 변할 가능성이 오늘날 더욱 커졌다. 이런 시대에 자기-삭제의 윤리는 어떤 뜻을 우리에게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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