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대 지젝 [1]

생각만들기 2010/01/08 23:47 lacan
1. 공산주의 건설을 위하여

지젝을 지금까지 당신이 읽지 못했다면? 당신이 일단 지젝 번역본을 몇 개 가져와 비교를 해보라. 번역자가 달라야 한다. 번역자마다 지젝을 조금 다르게 소개한다. 어떤 번역자는 지젝에게 "혁명"이나 "급진"의 뜻을 붙인다. 다른 번역자는 그런 이름표를 되도록 피하면서 이력서처럼 소개글을 쓴다. 왜 그렇게 차이가 날까?

지젝 소개보다 더 재미있는 소재가 있다. 당신은 지젝 해설서를 몇 권 가져와서 목차를 비교해보라. 목차는 대체로 대학의 학위 논문 목차를 닮았다. 당신이 읽는 해설서는 학위논문과 비슷하다. 그런데 학위논문의 원래 독자는 누구일까? 대학에서 학위논문을 쓰는 학생은 교수를 의식하면서 논문을 쓴다. 교수가 논문을 심사하니까. 그런데 지젝 해설서를 쓰는 사람은 왜 학위논문처럼 책을 썼을까? 교수에게 검사받지도 않는데.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깡패가 있다. 기자가 그를 취재하러 간다.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그는 다른 깡패 조직에 속해있다. 더구나 그 깡패와 사이가 나쁜 조직에 속해있다고 하자. 기자와 다른 조직깡패는 과연 그 깡패를 어떻게 기술할까? 아마 두 사람은 깡패를 조금씩 다르게 기술하겠지. 당신은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것이다. "뻔하구먼... 전달자가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전달에 매우 중요하다. 지젝을 전달하는 사람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지젝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서 다른 상상을 덧붙여보자. 깡패가 기자의 글을 읽었다고 해보자. 깡패는 기자의 글에 동의할까? 기자가 자신을 제대로 기술했는지 따질까? 물론 깡패는 기자가 진실하게 기술했는지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깡패에게 은밀한 속셈이 있어, 기자가 사실과 다르게 기술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자에게 거짓말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저자가 있고, 독자가 있고, 전달자가 있다. 전달자는 저자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전달자는 저자와 독자가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할까? 재미있게도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전달자는 저자의 진실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전달자는 저자와 독자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전달자는 독자와 저자가 서로 싸우기를 바라며 저자를 기술할 수 있다. 전달자는 독자가 그저 저자의 말을 즐기기 바라며 저자를 기술할 수 있다. 즐기면 되지 정말 저자가 말한대로 따라하면 곤란하다. ...

지금까지 지젝 해설서를 쓴 전달자는 지젝과 독자가 어떤 관계를 맺기 바랬을까? 해설서를 쓴 전달자는 은근히 독자에게 자신을 닮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젝을 학위논문을 쓰는 학생처럼 읽으세요.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전달자 같은 지식인을 없애려 한다면, 우리는 지젝이란 저자를 어떻게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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