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외국인이 신입생 면접을 했다. 신입생에게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 거냐고 물었더니 신입생이 너무나 자세하게 대답했다. 외국인은 흠칫 놀랬다고 한다. 이제 겨우 20살인데,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말하다니...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의 대학교 신입생은 지나치게 사회에 편입되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미리/앞질러 성취하려는 의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 외국인은 이것이 다소 천박하게 보였나 보다. 인생을 궁리하기 보다 그저 생존하기에 목을 매는 젊은이. 아마 외국인에게 한국 젊은이가 그렇게 보였나 보다.

물론 한국 형편이 넉넉지 않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젊은이에게 인생을 궁리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런 변명도 외국인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인도하는 기준이 사회적응이라면, 우리는 인생궁리보다 적응에 매진할테니까. 여기서 이렇게 물어보자. 사회적응을 목적으로 살면 안되나? 무슨 잘못이 있나? 대체로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쓰지 않나? 그런데 우리 자신을 잘 관찰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 적응에 성공한 사람을 좋게 평가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도 그는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회적응만 신경쓴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그는 분명 성공했지만 속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ㄱ) 사회 적응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회적응만 신경쓰는 사람은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사람은 어떤가? 사회 적응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와 지위가 약하다. 돈도 많이 모으지 못했고 사회적 명성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며 남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를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그 사람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고귀한 목적을 추구한다고 인정하지만 그의 삶을 모범으로 삼지 않는다. 쉽게 말해 자식에게 그 사람처럼 살라고 권하지 않는다.

ㄴ) 우리는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사람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이것을 기억하자. 사회적응과 다른 고귀한 목적?은 정말 고귀한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환상에 가깝다. 조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자원봉사도 하고, 기부도 하며, 사회활동도 한다. 나는 사회 적응만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적어도 스스로 이렇게 외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이 과연 주장 ㄴ)과 다른지 따져봐야한다. 그가 하는 사회활동/선한 활동은 사회적응의 윤활유와 같다. 그가 여가를 이용하여 하는 활동은 사회적응을 바꾸거나, 사회적응에 방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적응을 보충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차원을 생각해봐야 한다.

ㄷ) 사회적응활동은 어떤 윤리적 차원을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차원은 사회적응활동을 보충한다.

예를 들어 영화나 연속극의 주인공은 세속적 성공에 미쳐 모든 것을 쏟아붇는다. 하지만 그는 세속적 성공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과감히 성공의 길을 버리고 "자기 삶?"을 찾아 떠난다. 그런데 세속적 성공의 허망함을 한번 의심해봐야 한다. 영화처럼 세속적 성공이 허망하다고 해보자. 아니, 그냥 세속적 성공은 정말 허망하다고 해보자. 그런데 세속적 성공의 허망함을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제시하는 대안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속적 성공이 세속적 성공의 허망함을 만들어 내지 않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한 술 더 떠 세속적 성공의 허망함을 물리치는, 대안적 삶이 어쩌면 세속적 성공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따라서 나는 일단 이런 가설을 제시하고 싶다.

ㄹ) 사회 적응은 사회 적응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회적응을 넘어선 삶을 희미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삶이 정말 있다 해도 그것은 사회적응을 무력하게 만들만큼 강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적응을 넘어선 삶은 사회 적응이 만들어낸 허상일지 모른다.

ㄹ)을 사회적응의 아포리아라고 불러보자. 사회적응의 아포리아를 파괴해야만 참된 윤리를 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응의 아포리아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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