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얘기요!
일단 대안이 아닌 것부터 한번 따져보자.
ㄱ)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추구는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당신이 행복하게 놔두지 않는다. 당신이 정말 행복을 얻었더라도 당신을 기어이 불행하게 만든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행복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ㄴ)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
요즘 유행하는 지침이다. 이것부터 분명히 하자. 욕망을 정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나? 그렇다. 당신은 욕망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다. 욕망을 고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 지침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다. 당신은 욕망을 고수할 수 있다. 정말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 이것은 다소 허망하다. 이 주장은 대체로 칸트의 윤리학을 따른다.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하다. 당신이 무엇을 욕망하는가?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취미생활을 포기하지 않을거야!! 이런 욕망? 재미있게도 바디우는 충실성을 따지면서 정치, 사랑, 과학을 지적한다. 왜 취미생활이 아니라 과학일까? 지젝의 말처럼 이 지침을 따르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새로운 생활터전까지 마련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사회가 정립되어야 하는데, 그냥 새로운 사회가 시작될 기회만 제공하는 것 같다. 그 후에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정말 제대로 된 지침이라면 새로운 사회, 새로운 공동체까지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지침은 개인의 고독한 투쟁으로 끝나버리기 쉽다.
ㄷ)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남에게 도움이 될 때,
ㄹ)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남이 나를 인정할 때,
ㅁ) 남이 무슨 일을 하든 나에게 도움이 될 때,
ㅂ) 남이 무슨 일을 하든 내가 남을 인정할 때,
위 4 주장이 상당히 중요하다. 먼저 도움과 인정이 같이 가야 한다. 남이 나에게 도움을 준다면 우리는 그것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런데 도움만으로 부족하다. 내가 남을 인정해야 한다. 남이 나를 도운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은 아마 실망할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이란 구절이 상당히 중요하다. 당연히 내가 남에게 해를 입혀선 안된다. 이 조건 아래서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남이 도움을 받고 남이 나를 인정도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 아마 사람들이 직업 종류에 지금처럼 목을 매달지 않을 것이다. 직업종류는 사실 인정욕구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청소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자신이 청소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일하는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든 남이 당신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직업종류 때문에 맘 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대안이 아닌 것부터 한번 따져보자.
ㄱ)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추구는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당신이 행복하게 놔두지 않는다. 당신이 정말 행복을 얻었더라도 당신을 기어이 불행하게 만든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행복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ㄴ)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
요즘 유행하는 지침이다. 이것부터 분명히 하자. 욕망을 정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나? 그렇다. 당신은 욕망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다. 욕망을 고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 지침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다. 당신은 욕망을 고수할 수 있다. 정말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 이것은 다소 허망하다. 이 주장은 대체로 칸트의 윤리학을 따른다.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하다. 당신이 무엇을 욕망하는가?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취미생활을 포기하지 않을거야!! 이런 욕망? 재미있게도 바디우는 충실성을 따지면서 정치, 사랑, 과학을 지적한다. 왜 취미생활이 아니라 과학일까? 지젝의 말처럼 이 지침을 따르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새로운 생활터전까지 마련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사회가 정립되어야 하는데, 그냥 새로운 사회가 시작될 기회만 제공하는 것 같다. 그 후에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정말 제대로 된 지침이라면 새로운 사회, 새로운 공동체까지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지침은 개인의 고독한 투쟁으로 끝나버리기 쉽다.
ㄷ)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남에게 도움이 될 때,
ㄹ)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남이 나를 인정할 때,
ㅁ) 남이 무슨 일을 하든 나에게 도움이 될 때,
ㅂ) 남이 무슨 일을 하든 내가 남을 인정할 때,
위 4 주장이 상당히 중요하다. 먼저 도움과 인정이 같이 가야 한다. 남이 나에게 도움을 준다면 우리는 그것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런데 도움만으로 부족하다. 내가 남을 인정해야 한다. 남이 나를 도운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은 아마 실망할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이란 구절이 상당히 중요하다. 당연히 내가 남에게 해를 입혀선 안된다. 이 조건 아래서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남이 도움을 받고 남이 나를 인정도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 아마 사람들이 직업 종류에 지금처럼 목을 매달지 않을 것이다. 직업종류는 사실 인정욕구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청소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자신이 청소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일하는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든 남이 당신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직업종류 때문에 맘 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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