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누님, 형

생각만들기 2008/05/05 18:40 lacan

뭐라 불러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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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 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직급을 붙이면 왠지 "거북"하다. 대리, 과장, 계장.. 그런데 여기에 님까지 붙이면 정말 이상하다. 대리님? 심지어 모임을 할 때 오빠, 형, 누님까지 없앤 적도 있다. 처음 만나면 이름 뒤에 "씨"를 붙인다. 공식 표현이다. 하지만 친근하지 않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곧 오빠, 누님, 형이 등장한다. 대체로 나이가 드러나고 관계가 세워지면 그렇다. 이것이 우리 문화다.

이 문화를 없애려고 그냥 애칭을 부르기로 했다. 나의 애칭은 '에릭'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비호감'이라며 웃었다. 하여간 나의 소신은 직장에서 그대로 묻어나왔다. 직급을 생략하고 이름을 부른 것. 당연히 악의는 없었다. 이름. 가장 상식적이고 친근한 명칭이 아닐까? 그런데 몇 일전 책을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직업여성이 다른 직장으로 옮긴 후배직원과 전화를 하는데, 그 후배가 팀장으로 부르기 이상하다며 갑자기 누님이라고 하더란다. 그는 후배의 말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고. 웃고 넘어가도 되는 일이다. 요점은 언어습관의 뜻이다. 오빠, 누님, 형으로 부르면, 관계는 사사롭게 된다. 특히 직장에서 여자와 남자가 이런 호칭을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을 오빠로 부르는 여자가 과연 직장 동료로 보일까? 자신과 대등한 자리에서 경쟁하는 직장동료로 보일까? 아니면 자기가 지켜줘야 할 여자 동생으로 보일까?

여기서 잠시 나를 돌아보니 나의 언어습관도 참 일관성이 없다. 사장을 사장님으로 부르지만, 나머지 사람에게 이름을 부른다? 이것도 이상하다. 사장을 ~~씨라고 부르면 과연 사장이 기뻐할까? 따라서 직장선배를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다짜고짜 ~~씨라고 부른다면, 그는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겠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직급이 가장 좋은 명칭이다. 그럼 직장 밖에서? 딱 부러지는 답은 없다. 친근하려면 일단 오빠, 누님, 형이 적당하다. 하지만 이런 명칭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평가도 있다. "손쉽게 여성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유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보호받는 여자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여자를 약체로 만드는 것에 기여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오빠, 누님, 형이란 말을 여자가 쓰면, 쉽게 남자와 관계를 설정할 수 있지만, 길게보면 여자 권리는 더욱 약해진다는 말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나? 너무 생각이 많은 거 아냐? 그러나  몇 년전 중국에서 문화충격을 받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오빠, 누님, 형이란 명칭은 친근하지만, 관계를 누르는 멍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중국 아가씨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렸다. 그들은 친구의 나이를 알았기에 내 나이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오빠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친구처럼 대했다. 처음 봤는데 아주 친하게 대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내 나이를 알았지만, 연장자로 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그들에게 연장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는 우리처럼 몇 달차이까지 세심하게 따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버릇없는 녀석같으니' 이렇게 반응할 수 있겠으나 나는 오히려 반대로 느꼈다.  '정말 편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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