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살림


1. 왜 선하게 살지 못하나?

학원 발가벗기기 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마 중,고등학생이라면 반드시 "암기"하시라.

"이 책을 읽을 만큼 공부에 관심있는 학생이라면 다짐과 실천, 포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하면서 공부해왔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든 학원이든 과외든 수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공부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학원을 바꾸고, 최고 강사를 찾아다니고, 공부장소를 바꾸고, 학습법을 읽어봤지만 소용이 없다. 성적이 안 오른다. 왜? 의지가 약해서 혹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아니다. 학습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공부방법"을 몰라서 그렇다. 그것을 모른 채 공부하니까 힘만 들고 결과는 보잘 것 없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나? 놀랍게도 이 궁극적 해결책은 신학적 울림이 있다. 기독교인은 오래동안 선한 삶을 위해 노력했다. 예수를 믿었다면 그것을 끝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의 짐을 지고, 평화를 이루고... 기독교인은 잘 안다. 하지만 "안된다." 왜 이것이 잘 안될까? 왜 예수를 믿지만 여전히 선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할까?

1) 의지가 약하다.
2) 악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다.
3) 사탄이 선행을 막는다.


위 인용문을 보면, 세 가지 모두 답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선을 "내 것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을 알지만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멋져요!! 이로써 진중한 신학적 문제가 풀렸다. 선을 내 것을 만드는 법을 알아라. 그러면 당신은 진짜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인간적인 그리고 인간적인"의 저자도 똑같이 말한다. 선을 습관적으로 행하라. 그러면 당신은 선한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선이 "내 몸에" 들어 앉아야 한다.


2. 도덕 역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매우 이상한 세계에서 산다. 보통 기독교인을 비판할 때, 겉과 속을 비교한다. 겉으로 고상하지만, 속으로 타락했다. 겉으로 기독교인으로 사랑을 외치지만, 사실 성도를 강간했다... 정말 사정이 이렇다면, 차라리 답은 간단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마 진짜 기독교인이 아닐게다. 아니면 기독교가 그런 위선을 부추기거나.

그런데 겉으로 타락했지만, 속은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 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빌 게이츠를 보자. 그는 "냉정한" 자본주의 옹호자이다. 그런데 은퇴하면서 자선사업을 하겠단다. 성공한 기독교인을 보자. 그는 누가 보더라도 성공했다. 세속적 기준으로 따져도 그렇다. 그런데 그는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그의 종교심에 거짓이 없다.

예전에 거리에서 잠시 격투기 프로를 봤다. 어떤 선수가 나와서 면담을 한다. 그는  곧 자기와 경기를 할 상대선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 친구고 경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친구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나는 너를 이길 것이다. 아주 냉정하게 너를 물리칠 것이다.'
 
여기서 그가 우정을 잘못 이해했을까? 아니면 우정과 승부는 다르다고 믿는가? 그에게 우정은 오히려 승부욕을 직접 부추긴다. 우정을 강할수록 승부욕도 불탄다. 우정은 승부욕을 지피는 기름과 같다. 기독교 신앙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성공한 기독교인은 기독교를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가 신앙에 집착할수록, 신앙대로 행할수록 성공한다. 즉 기독교신앙은 성공의 연료다.


3. 훈련과 성공.

사실 이것은 황당하게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 성공한 사람은 엄격한 훈련을 권한다. 우리는 엄격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훈련된 사람이 정말 성공한다. 중간에 흔들리거나 유혹에 굴복하면 성공은 없다. 따라서 성공하려면,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즉 선을 내 것으로 만드는 법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인은 선을 안다. 성경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안다. 그것을 열심히 학습하고 그것대로 실천하자. 그러면 선한 삶과 함께 성공도 따라온다. 얼마나 좋은가?

4. 그런데 성공은...

이름만 들으면 누군지 잘 아는 교수에게 나는 성공의 비법을 들었다. 자기에게 집중하라. 맡은 일에 충실하라. 자신을 믿어라. 비전과 목표를 세워라.... 사실 이렇게 하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의지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즉 이런 규칙을 "내 것으로 만들어" 습관처럼 행해야 한다.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

여기서 매우 묘한 상황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 선한 삶을 살 때, 선한 삶을 위해, 연습할 때 그는 고통을 겪을지 모른다. 결과도 신통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분은 분명하게 강조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 선한 삶을 위한 연습/노력은 좋은 결과를 낸다. 성공, 행복을 가져온다. 물론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나?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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