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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21:12
lacan
. 엄마를 위한 책.
교육관련책의 주제를 한번 보라. 그러면 저자의 음모?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교육관련책은 크게 두 주제를 가진다.
ㄱ) 교육을 올바로 하자.
ㄴ) 교육제도에서 성공하자.
학생은 이 주제에 어떻게 반응할까? 교육을 올바로 하자? 솔직히 말해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학생이라면. 그리고 올바른 교육을 한다고 학생이 과연 행복해질까? 학교 생활이 즐거워질까?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 두 번째 주제. 성공하자는 어떤가? 이건 학생에게 매력있지 않을까? 성공하자는 책은 주로 방법을 논한다. 이렇게 하면 공부 잘 한다. 일단 이것만 지적하자. 학부모나 교사의 예상과 달리 학생은 공부법 서적을 많이 읽지 않는다. 설사 공부법을 제대로 알아야 공부를 잘 한다 해도, 학생이 스스로 올바른 공부법을 터득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교육관련책을 읽느냐? 엄마다. 저자들은 사실 엄마를 겨냥하여 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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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9 21:49
lacan
루저 사건? 을 보고 교훈을 하나 얻자.
특히 눈 깜짝할 사이에 유명해지고 싶은 분은 꼭 참고하시길. 루저녀는 하루밤만에 동아일보 한쪽 면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 아마 이 말에 분개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심지어 루저녀를 "잡아 먹겠다고' 작심한 분도 보인다.
루저녀를 퇴학시키라고 압박을 할 정도이니. 그런데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이상한 생각이 든다. 결국 루저녀의
말이 맞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게 아닐까? (일단 옳은지 그른지 잠시 보류한다면)
그런데 우리에게
이미 이런 주장을 부드럽게 하는 해석학?이 있다. 연애영화를 보면 이런 해석학으로 가득하다. 최근 <내 눈에 꽁깍지>
에서 남자 주인공인 강태풍도 이런 해석학을 구사한다. 강태풍은 교통사고로 일시적 시각장애?를 겪는다. 그래서 별로 예쁘지도 않은
소정을 사랑하게된다. 갑자기 이뻐보여서! 하지만 일시적 시각장애는 그치고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강태풍의 마음은 변한다. 그렇게
예쁘던 소정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강태풍은 아예 알아보지도 못한다. 당연히 소정은 큰 상처를 입고 떠난다.
이
영화 결론은 참 밝다. 해피엔딩이다. 당신도 이제 사건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짐작이 갈 게다. 강태풍은 다른 여자를 만나보지만
소정을 잊지 못한다. 왜? 소정에게 다른 장점이 많으니까. 성격도 활발하고, 애교도 있고, 남자의 기분도 살려주고, 잔소리도
하지 않고... 결국 외모만 부족했지 장점이 많은 여자이다. 그래서 강태풍은 결국 마음을 바꿔 소정을 사귀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강태풍은 외모를 인간성과 비교했다. 외모는 전부가 아니다. 외모는 그저 인간됨에 속하는 하나의 특징이다. 이것만 보고 인간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나? 당신도 평소 이런 논리를 자주 사용했을 것이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이
해석학이 하나 빠뜨린 사실이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인정한다. 탁 터놓고 말해보자. 외모만 보는 사람은
참 드물다. 그런데 외모는 다른 요소를 물들인다. 외모가 좋으면 다른 것도 좋게 보인다. 반면 외모가 부족하면 다른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쁘면 용서된다는 우스개소리도 바로 이런 뜻이다. '그래요.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요. 다른 장점이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을지 몰라요. 하지만 외모가 좋으면 더 좋겠죠' 이 주장은 참 교묘하다. 외모만 보는 것을 일단 어리석다고 인정하지만,
여전히 외모라는 기준을 버리지 않는다. 즉 외모가 좋다면, 더 좋을 것이다. 외모는 이상한 예외이다. 외모가 좋다면, 더 좋을
것...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한번 상상해보라. 그래요. 나는 외모만 보지 않아요. 그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외모가 좋으면...
이 논리는 일관성이 없어서 오히려 힘이 있다. 이 논리를 옹호하는 사람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외모를 보는 것이 잘못인가? 외모가 좋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이런 논리가 오히려 외모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고
꼬집으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야. 나도 다른 장점을 본다니까. 외모만 보지 않아!'
몇 주전에
티비엔에서 다이어트를 거부하는 여자가 나왔다. 그는 다이어트를 했으나 실패했다. 원래 식성이 좋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서
음식조절이 쉽지 않다. 그는 다이어트를 다시 하려다 생각을 아예 바꿔버렸다. 왜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다이어트를 해야하지. 나는
나다. 나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살란다! 그는 정치적으로 아주 올바른 결정을 한다. 각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살 자유가 있으며
굳이 사회의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회자는 집요하게 그를 공격했다. 사회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그가 개성을
주장할수록 그는 처량하게 보인다. 실패를 애써 감추려는 사람같다. 사회자는 계속 반박한다. 솔직히 말해 다시 날씬해지고 싶다면,
날씬해지겠느냐? 당연히 당신은 날씬해지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날씬해지도록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결국 그는 결심을 다소 꺾는 듯 보였다. 자기처럼 뚱뚱했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자가 나와 조언을 하자. 그는 다소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여
기서 다시 궁지가 드러난다. 소박한 자유주의는 외모를 이기지 못한다. 나는 나다. 나는 개성적으로 산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넌 자격미달이야' 라는 숨은 메시지를 더욱 부추긴다. 개성적 외모를 주장하는 사람은 애처로운 동정을 받기 쉽다. 즉 개성적
외모를 진정한 외모로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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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22:54
lacan
1. 키 작은 남자는 이민가라
"키 작은 남자는 loser루저 입니다" 이 말 한 마디로 그는 동아일보 한 쪽을 모두 점령해버렸다. 외국미녀가 나오는 프로그램. 함께 출연한 한국인 여대생은 면담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방송이 끝나고 이 말은 빛의 속도로 인터넷에 퍼졌다고 한다. 여대생의 개인정보는 다음날 아침에 벌써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재미있게도 뜨겁게 반응한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놓친 것 같다. 이렇게 뜨거운 반응은 오히려 여대생의 발언을 지지한다. 즉 여대생의 말은 결국 옳았다. 키작은 남자는 정말 루저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200도 증기열에 데인 사람처럼 펄쩍 뛰었을까?
이 말을 살짝 바꿔보자. 학벌이 나쁜 남자는 loser루저이다. 이 말에 동의하나? 아마 많은 사람이 이 말에도 화들짝 놀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반응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은밀하게 중얼거릴 것이다. '그래 학벌이 나쁜 남자는 루저가 맞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벌이 나쁜 남자와 키가 작은 남자를 정말 조사해보자. 그들은 루저일까? 사회학적 조사를 했다고 상상해보자.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학벌이 나쁘고 키가 작아도 잘 사는 사람이 많다. 이런 결과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반응했다고 해보자.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지. 키와 학벌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키와 학벌에 집착하지 마. 학벌을 좋게 만들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지 말자는 거지. 오히려 너의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찾아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에게 반대할 것이다. 오히려 실제 결과가 그렇게 나왔더라도 키와 학벌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학적 조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관점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순진하다!
여기에 학벌과 키의 역설이 숨어있다. 우리는 대체로 학벌과 키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우리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키와 학벌은 그래도! 중요하지.
2. 학벌의 해석학?
너무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게 외모를 중화?하는 해석학이 있다. 당신도 잘 알 것이다. 이렇게 물어보라. 외모만 보는 남자가 있을까? 진지한 관계를 원하는 남자는 대체로 외모만 보지 않는다. 외모는 중요하다. 하지만 외모는 사람의 부분이다. 사람에게 다른 부분이 있다. 다른 부분을 골고루 보면, 외모가 출중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내 눈에 콩깎지>에서 남자 주인공 강태풍이 정확히 이런 해석학을 구사한다. 강태풍은 평소 마음을 중시하는 건축가이다. 하지만 강태풍은 예쁜 여자만 만난다. 여자는 일단 예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귈 수 없다. 강태풍은 교통사고를 당해 잠시 시각장애를 겪는다. 이때 소정을 만나는데, 우연히 소정이 절세 미인으로 보였다. 당연히 시각장애였다. 그 사실을 모른 강태풍은 소정과 사랑에 빠졌다. 예상대로 소정은 원래 못생긴? 여자이다.
일시 시각장애가 그치자 강태풍은 결국 소정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된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소정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강태풍은 아예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세요?" 강태풍은 나중에 시각장애현상을 알게 되지만, 소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정은 못났으니까. 여기서 영화는 예상대로 흘러간다. 강태풍은 소정과 사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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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19:46
la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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