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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교육학(5)

생각만들기 2010/03/17 08:13 lacan
왜 그렇게 교육에 집착하십니까? 아주 강력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교육은 미래 준비를 뜻한다. 앞으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것이 전부인가? 여기서 조금 더 첨가해야 한다. 미래 사회적 위치는 대체로 고정된다. 한번 저소득층으로 굴러 떨어지면 다시 고소득층으로 오르기 어렵다. 이제 그림을 완성해보자. 교육은 미래 사회적 위치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리고 미래 사회적 위치를 쉽게 바꿀 수 없다. 따라서 미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할 때 교육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교육은 유일한 열쇠인지 모른다.

일단 이 생각이 맞는지 따지지 말자. 우리는 그냥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에 목을 매단다. 여기서 둘째 주장을 잠시 검토해보자. 미래 사회적 위치를 바꾸기 어렵다? 그럼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보라. 어떤 사회는 당신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부러 당신 인생을 망치려고 덤비지도 않는다. 그냥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을 맡겨둔다. 당신 인생은 당신이 선택한 결과이다. 하지만 당신이 일단 선택했다면, 그것을 되돌리기 어렵다.

반면 다른 사회는 당신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를 준다. 그런 기회를 주도록 사회제도를 정비한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때, 당신은 인생을 바꿀 기회를 쓸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인생을 바꿀 기회를 주는 사회에 살고 싶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그런 사회로 만들면 어떨까? 그런데 교육이 인생을 바꿀 기회라고 해보자. 다른 기회는 없을까?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인생을 바꿀 기회를 준다. 어른은 어떻게 되나? 어른도 인생을 바꾸려면 교육을 받아야 할까? 너무 경직된 사고다. 교육만이 인생을 바꿀 수단이라면 얼마나 불편한가? 모든 사람이 교육을 받아야 되니까?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따라서 이렇게 생각해보자.

ㄱ) 사람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를 주자.

ㄴ)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언제 사용할지 개인이 정하도록 하자.

ㄷ) 인생을 바꿀 기회를 쓰기 위해 반드시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

교육은 인생을 바꿀 밑천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문제가 많다. 교육은 대체로 능력을 기른다. 교육은 능력있는 사람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이 일을 잘 할까? 그런 보장은 없다. 교육이 보장한 능력은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할 때 일을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능력이 있어도 일을 못하면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직업을 잃을 수 있다. 교육 성과로 어떤 사람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우습다. (특수 전문직은 다소 예외가 되겠지만. 그러나 의사를 생각해도 결국 의료현장에서 일을 잘하는 의사가 인정받는다. 단지 교육기관에서 성적이 좋다고 우대할 수는 없다.)

이 런 것을 생각할 때, 교육은 인생을 바꿀 기회로 그다지 좋지 않다. 차라리 구약성서에 나온 빚청산법을 떠올려보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회구성원의 빚을 모두 없애준다. 빚을 0으로 만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런 법규가 오히려 인생을 바꿀 기회로 적절하다. 빚이 없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많은 사람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한 걸음 더 나가 <기회-부여자금>을 만들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인생을 바꾸고 싶을 때 그는 <기회-부여 자금>을 사회에 신청한다.

ㄹ)  빚을 없애준다. (기간은 적절하게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10년 주기로)

ㅁ) 개인은 <기회-부여자금>을 사회에 청구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빚청산을 악용하면 어떻게 하나요? 빚청산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하되 계층에 따라 누진적으로 청산하자. 고소득계층은 빚청산비율이 적다. 반면 저소득계층은 거의 모든 빚을 청산 받는다.